아쉽지만 PC통신의 명맥이 끊기다….
내가 PC에 관심을 가지게 했던 “천리안”
1991년. 저는 당시에 국민학생(초등학생) 이었습니다. 대략 1990년경부터 집 근처 동네에 있는 “컴퓨터학원”을 다니기 시작했고 8086 XT 기반의 PC로 MS-DOS 명령어와 GW-BASIC 이라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웠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학교에서 덧셈, 뺄셈, 나눗셈 밖에 모르는 어린아이가 GW-BASIC을 배우는거 자체가 꽤나 배거웠던거 같네요. 컴퓨터 학원 수업시간에는 학원 선생님의 강의에는 거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던거 같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잠시나마 “페르시아 왕자” 등의 게임을 하는것에 재미에 들렸던거 같네요.
5.25인치 디스켓 박스를 학원 가방에 챙겨 다니면서 MS-DOS 기반의 게임 소프트웨어를 복사해서 디스켓을 바꿔가며 실행을 시켰던게 생생히 기억에 남습니다. GW-BASIC 관련 책으로 수업을 했는데 책은 거의 손을 대지 않아 깨긋했던거(?) 같습니다 ㅎㅎ
학원에서 컴퓨터를 만지는거 자체가 신세계였지요. GW-BASIC 자체를 이해를 못했지만 MS-DOS 명령어는 빠삭하게 익혔던게 기억납니다. 그 이유는 “게임”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게임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텍스트 기반의 MS-DOS 명령어를 잘 다룰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1990년 당시만 해도 PC통신이라는 건 전혀 꿈꾸지 못했습니다. 학원에서는 PC통신이나 네트워크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던거 같습니다. 오로지 PC는 MS-DOS를 디스켓으로 부팅시켜서 GW-BASIC를 실행시키거나 “게임” 혹은 “한메타자교사”를 실행하는 걸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학원에서만 PC를 다루다 보니 주변에 간혹 집에 PC를 보유하고 있는 집이 꽤나 부러웠습니다. 1990년 당시에 PC는 80286 만해도 신제품이 100만원이 훌쩍 넘는 거금이었습니다. (당시 아이스크림이 50원/100원 하던 시절, 근로자 월급이 50~100만원 하던 시절)
그러나 1여년 뒤, 학교를 다녀오고 집에 오면 엄마 앞에서 “컴퓨터~컴퓨터~” 노래를 한창 불렀습니다. 그러다 결국 제 성화에 못이겨 드디어 집에 컴퓨터가 생겼습니다.
80286 AT, 하드디스크 40 MBytes, 메모리 1 MBytes, 허큘리스 모니터, 옥소리 사운드 카드가 장착된 어마어마한 컴퓨터였지요. 지금 웬만한 임베디드 시스템보다 한창 뒤떨어지는 사양이지만 당시만 해도 꽤나 쓸만한 PC였습니다.
운명처럼 제 방앞에 놓여진 PC는 그렇게 제의 미래를 바꿔놓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PC를 중고로 판매한 사람은 아버지의 지인이었는데, 그 지인은 PC에 대해 굉장히 관심이 많던 사람이었습니다. PC를 중고로 팔게 된 계기는 그 지인이 80386 PC 를 새로 구입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드디스크가 장착되어 있어서 디스켓이 없어도 부팅이 가능했고 마우스라는 신기한 보조 장치가 있어서 모니터에서 마우스가 움직이는대로 커서가 움직이는게 너무 신기했던거 같습니다. 또한 “사운드카드” 가 장착되어 있어서 별도 스피커를 연결하면 컴퓨터 학원에서 듣던 PC 내장 사운드에 비해 웅장한 사운드를 듣는게 너무나도 신기했습니다.
그런데 이 PC는 또다른 신세계를 제게 선물해 주었습니다. 바로 “모뎀” 이 장착되어 있었지요. 당시 장착된 모뎀의 최대 속도는 “2400 bps” 입니다. 가히 상상이 되시나요? ㅎㅎ
물론 속도는 느렸지만 집안의 전화선을 모뎀의 포트에 연결하여 PC 통신을 할 수 있다는 점은 제게 정말 신세계로 다가왔습니다. 당시에 그 80286 AT PC를 거금 40만원을 주고 구입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저희 아버지가 큰 돈을 쓰셨었네요.
그런데 신기한점은 우리에게 PC를 판매한 그 지인이 적극적으로 “PC통신” 이란 개념을 설명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가족 모두다 생소했었고, 그런걸 어디다 써먹냐는 말이 있었지만 결국 그 지인의 설득에 넘어간 아버지가 “천리안”에 가입을 하게 만든 것이었습니다.
천리안은 “유료 서비스” 였는데요, 당시에 월 1만원이 조금 넘는 금액이었던거 같습니다. 그런데 PC 통신을 하는거 자체가 집안의 전화 회신을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뎀으로 천리안에 연결되어 있으면 전화요금 + 천리안 월 정액 요금이 나가게 되는 구조였습니다.
또한 모뎀으로 천리안에 연결하게 되면 우리 집으로 전화가 오면 “통화중” 상태가 되고, 전화 또한 걸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불편함이 존재했습니다. 그럼에도 부모님께서는 저의 PC통신 생활을 적극 지지해 주셨던거 같네요.
그렇게 저의 PC 통신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멋모르고 시작했던 PC통신의 대면은 저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거 같습니다. 학원에서도 시간가는 줄 모르고 컴퓨터를 만졌었는데, 집에서 PC + PC통신은 제게 무한한 호기심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너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다보니 역효과가 발생했는데요. 학교만 다녀오면 방안에서 컴퓨터 + PC통신을 해대니 일단 전화가 불통이었고 전화요금이 엄청나게 많이 나왔습니다. 많이 나올때는 1991년 당시 10만원 넘게 나왔던 적이 있었습니다.
부모님의 잔소리가 있었지만 그리 심하지는 않았습니다. 부모님께서 사업을 하셔서 집에는 저녁 이후에 들어오시기 때문에 저의 PC통신 생활은 그칠줄을 몰랐지요. 특히나 PC통신에 “이야기”로 접속해서 삼국지2 관련 정보나 페르시아 왕자 관련 게임 정보를 얻는 것은 무책이나 재밌었습니다.
“ATDT 01420” 으로 연결했던 천리안. 천리안에 접속해서 시간 가는줄 모르고 PC 통신을 즐기다 보니 전화 불통 및 전화요금이 엄청나게 나왔지만 별 다른 잔소릴 안하셨던 부모님. 어찌보면 그런 일련의 과정들이 제가 IT 업계 및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로 진출하게 된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러다가 PC 관련 잡지를 사서 보기도 하고 C언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C언어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C언어로 “게임”을 개발했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제가 즐겨하던 게임인 “울펜슈타인 3D” 를 C언어로 개발했다고 하니 C언어를 해봐야 겠다는 생각을 초등학생때 하기도 했습니다.
당시에는 국내 IT 분야에서 “안철수” 님의 V3 를 제 PC에서도 필수로 다운로드 하여 사용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그만큼 안철수님은 나름 시대를 앞서간 IT 분야의 개척자였는데… 살짝 안타깝기도 합니다(정치인으로 전향은 좀..).
어쨌거나 중 1~2 때 처음으로 C언어 책을 사보기도 했습니다.
위 사진 맨 오른쪽에 “안녕하세요 터보 C” 라고 보이시죠? 게임한번 만들어 본다고 C언어 책을 사서 봤지만 당췌 이해할 수가 없어서 결국 포기했습니다. ㅎㅎ
그럼에도 저의 PC 통신 생활은 중학교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러다 고등학교를 가고 입시 준비한다고 하면서 PC 다루는 것을 살짝 멀리했지만 초~중학교때의 추억은 제게 현재의 직업을 선택하게 된 매우 소중한 경험이라고 보면 될거 같습니다.
닷컴 및 인터넷의 등장 후 PC통신은 내리막 길을 걷다
고등학교 ~ 대학 때 한창 “IT 벤처 붐” 이 일었던 거 같네요. 각 가정에 초고속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자연스레 PC 통신은 점차 사용자가 줄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대학에 진학할때는 한창 “개인 홈페이지 만들기” 붐이 생겼던거 같습니다.
그럼에도 2000년대 중반까지 인터넷 회선으로 주요 PC 통신 망인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등의 접속자는 꾸준히 있었는데요, 인터넷과 IT 기술, 웹 서비스가 기하 급수적으로 발전하면서 이들 PC통신 서비스들의 사용자 수는 점차 줄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하이텔은 2007년, 나우누리는 2012년에 아예 서비스를 중단 했더군요. 더이상 수익성이 나지 않았을 겁니다.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했던 거지요.
전 그래서 당연히 3대 PC 통신 서비스인 “천리안”이 진직 서비스 종료가 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2024년 7월 9일 오늘, 의외의 뉴스를 보게 됩니다.
바로 위 기사인데요, PC통신 서비스를 마지막으로 유지하던 천리안이 2024년 10월 31일자로 서비스를 완전 종료한다는 내용입니다.
아마 진직 PC 통신 접속은 서비스가 종료되었을거 같고, 천리안이라는 포털 서비스를 아예 종료하기로 결정한거 같습니다.
천리안 포털은 “미디어로그” 라는 회사가 운영하고 있는데, LG U+의 자회사라고 하는군요. 원래 천리안은 “데이콤” 이라는 회사에서 운영했는데 LG 데이콤이 되었고 지금은 LG U+가 되었네요.
1985년부터 “천리안”이 운영되었는데, 이제 약 39년만에 서비스가 종료된다고 하니 제 인생에서의 추억이 사라지는거 같아 살짝 아쉬운 감이 듭니다. 천리안은 제게 있어서 제 인생의 방향을 결정해준 “고마운 은인”이나 다름이 없는거 같습니다.
아쉽지만 기업은 “자선 사업가” 가 아니니까요. 천리안이 종료되는건 다 이유가 있을겁니다. 다만 AI가 등장한 지금 PC통신은 이제 기억 저 편으로 사라지는게 당연할 수도 있을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