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래머들은 왜 폐쇄적인 공간을 좋아할까?
얼마전 연봉과 학벌에 대하여 칼럼글을 쓴 적이 있다. 그 글에서 필자는 최근에 본의 아니게 이직을 한 사실에 대해 알린 적이 있었다.
사실 이직을 한 지는 정말 얼마 되지 않았다. 전에 일하던 회사에서 더이상(?) 개발일을 할 수 없게 된 상황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산전수전 겪은 프로그래머들은 필자의 얘기가 어떤 것인지 대충 짐작은 할 것이다. 내가 더 있고 싶어도 있을 수가 없고 월급을 받고 싶어도 더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닥치게 되면 자연스레 생계를 위해 다른 곳을 찾기 마련이다.
프로그래머는 보통 어느 회사에 소속되서 일을 한다. 나도 마찬가지로 여태까지 회사에 소속되어서 지금까지 개발일을 해왔다. 여느 프로그래머는 회사에 소속되지 않고 회사와 인력 계약을 맺고 “프리랜서” 형태로 개발일을 하기도 한다. 프로그래머 스스로가 사업자나 법인을 세워서 직접 인력 계약을 한다고 해도 어쨌거나 프로그래머는 계약한 회사의 사무실에 상주하면서 개발일을 수행하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에 이직한 회사에서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아 “프리랜서”들이 약간 부러워지는 사건이 하나 발생했다. 그 사건의 발단은 “사무실 이전”을 하면서다.
사무실 이전을 하면서 낮아진 “파티션”
직장을 다니다보면 회사 사정에 의해서 사무실 이전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사무실 이전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꽤 번거롭고 피곤한 일이다. 그 이유는 필자가 “임베디드 프로그래머” 이기 때문이다.
임베디드 리눅스 쪽을 다루다 보니 아무래도 회사는 “제조업”에 속한 회사들이 대부분이다. 내 책상에는 PCB 위에 부품들이 실장된 “보드(Board)” 가 항상 놓여져 있고 디버깅을 하려면 계측 장비와 하드웨어 엔지니어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회사 안에는 랩(Lab) 실이 별도로 있고 규모가 큰 곳은 제품 생산 시설 즉 공장이 있기도 한다.
따라서 이런 환경에 있다보니 회사를 이전하거나 사무실을 이전하는 날에는 프로그래머들도 이삿짐 나르는 일에 동원된다. 솔직히 영 내키지 않는 일이다. 안쓰던 몸을 써야 되고 불필요한 정리를 다시 해야 되며 환경이 바뀌다 보니 개발 환경도 다시 셋팅해야 한다.
그래서 회사 이전에 대한 좋은 추억이 없는 바… 또 용케 이직한지 얼마 안된 현 회사에서 사무실 이전을 한다는 것이다. 아뿔싸!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회사 적응도 되지 않았는데 이사라니… 회사 규모도 어느 정도 되는 편이라 내 자리 이삿짐 싸는 거 외에 계측 장비며 부품이며 무거운 짐들을 나르는데 나도 동원되어야 했다.
뭐 그나마 위안인 것은 이전 하는 사무실이 “신축 건물” 이라는 것이다. 현재 배치받은 자리도 나름 나쁘지 않았고 적절히 화면 보호(모니터)도 되어서 이사가는 사무실도 괜찮겠지.. 라는 생각을 가지고 열심히 이삿짐을 날랐것만 앗!
배치된 내 자리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 이유는 낮은 파티션의 높이 그리고 양 옆은 아예 없는 파티션의 책상이었던 것이다.
위의 사진과 같이 붙어있는 책상 양 옆에는 아예 파티션이 없었다. 그리고 건너편 책상 사이에만 대략 30 cm 정도 높이의 낮은 파티션만 설치되어 있었다. 사실 지금까지 회사를 다니면서 이런 파티션 환경에서 일을 해본적이 없다. 현 회사에서도 이전하기 전에 사무실은 이정도까진 아니었는데 이번에 새로 사무실을 이전하면서 파티션을 아예 없애버린 듯 하다.
아.. 갑자기 약간 혼란스러워진다. 내 옆에 사람들이나 건너편 사람들의 얼굴을 마주보고 프로그래밍을 해야 하는 건가? 과연 집중이 잘 될련지 걱정스러웠다.
파티션이 뭐가 중요해?
현재 회사의 자리 배치를 보며 여러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경영진들이 프로그래머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사실 사무실의 벽을 없애는 것은 잘나가는 IT 기업들의 유행이었다고 볼 수 있다.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등이 직원들 간에 원활한 소통과 자유로운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파티션을 없애는 사무실을 만들기 시작했고 이는 유행처럼 다른 기업들에게로 번져갔다. 실리콘밸리 기업의 70%가 사무실의 파티션을 없애는 것에 대해 동참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미국 IT 기업 들의 “개방형 사무실”은 그동안 칸막이와 파티션으로 상징되는 “벽”을 허물고 구성원들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면서 “혁신”의 상징이 되었다. 해마다 최고 성과를 내는 IT 기업인 “구글”의 이러한 움직임은 “개방형 사무실”이 모범 답안으로 평가되기 매우 충분한 듯 하다.
미국에서의 유행은 당연히 한국에서도 따라하게 되어 있다. “혁신”을 강조하는 회사마다 파티션 없애기, 개방형 사무실을 추구했고 그 여파가 현재 재직중인 회사까지 오지 않았을까?
새로운 건물에서 깔끔하고 아늑한 사무실이지만 양 옆에 휑 하니 뚤린 책상을 보면서 여간 신경이 쓰인다. 내 뒤를 지나가는 사람, 내 자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커피 머신, 정수기를 늘 이용하는 사람들, 특히나 사무실 출입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나의 모니터…
며칠 “개방형 사무실”에서 프로그래밍을 해보니 집중이 도통 되지 않는다. 누군가 내 뒤를 지나가거나 누군가 내 옆을 지나치면서 힐끗힐끗 쳐다보는거 같다. 아… 영 적응이 되질 않는다.
나도 모르게 퇴사 욕구가 솟아오른다.
칸막이 혹은 파티션이 필요한 이유
사실 어느 회사건 간에 관리자나 CEO의 입장에서는 폐쇠적인 사무실보다 “개방형” 사무실을 선호하기 마련이다. 당연히 그 이유는 “관리”가 편해서다.
직원을 고용하고 부리는 CEO나 관리자는 직원들이 업무 시간에 “딴 짓”을 하는 것을 싫어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같은 비용으로 직원들이 최대의 성과를 내주길 바라고 있다. 따라서 관리자 입장에서는 고용한 직원이 업무 시간에 딴짓을 하는지 감시하고 싶어한다. “딴 짓”을 하는 동안에는 회사의 매출과 성과에 방해가 된다고 당연히…. 생각한다.
물론 어느정도 업무와 상관없는 딴짓을 감시할 권리가 있는것은 분명하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라. 만약 당신이 고용주라면 직원들이 업무 시간 내내 메신저 대화와 웹서핑, 전화 통화, 쇼핑 등을 하는 것을 좋아하겠는가?
프로그래머도 별반 다르지는 않다. 어느 회사에 고용된 프로그래머라면 업무 시간 만큼은 회사에서 요구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거나 유지보수하는 일에 충실해야 한다.
나도 업무시간에 “딴짓”을 하는 프로그래머들을 별로 선호하진 않는다. 지급받는 돈이 적든 많든 일단 회사에 고용된 프로그래머라면 업무를 저해하지 않는 선까지는 “딴짓”을 하되 그 외 시간에는 당연히 회사 업무에 충실해야 한다. 그 딴짓은 1시간에 10분 내외면 적당하다.
하지만 관리자들은 직원들의 마음을 알수는 없다. 이 사람이 업무 시간에 딴짓을 하는지 열심히 하는지는 계속 지켜보지 않고는 알 수 없다. 특히 겉으로 들어나지 않는 “프로그래머”의 업무는 더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구글은 관리 기능의 강화와 “혁신” 이라는 포장된 명목하에 칸막이를 없애버린 것을까? 그래서 구글이 엄청난 성과를 내고 IT 기업의 선두주자가 되었을까?
구글의 개방형 사무실에 관련된 블로그 글이다. 구글에서 시작된 “개방형 사무실”이 틀렸다는 것을 설명해 놓고 있다. 실제로 구글의 사무실 문화가 현재도 개방형인지는 알수 없지만 현재도 개방형이라면 약간의 의문이 들기도 한다.
사실 프로그래머는 “집중력”이 필요한 지식 노동자다. 우리가 학창 시절에 학교를 다니면서 공부를 할때 어떤 곳에서 집중이 잘 되었을까? 사람마다 선호하는 장소가 다르긴 하지만 여러명이서 탁 트인 공간에 둘러앉아 서로를 마주보며 시끄러운 소음을 들으면서 “집중”이 잘된다고 보진 않는다.
스타벅스 같은 “카페”에서 공부하는 것을 선호하는 “카공”족들이 있긴 하지만 지금까지 십수년간 프로그래머로 생활해온 난 정 반대이다. 조용한 환경에서 주변의 소음이 없는, 특히 “칸막이”로 둘러싸인 파티션이 설치된 환경에서 집중이 잘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주변의 프로그래머들에게 “칸막이”와 파티션에 대해 물어보기로 했다. 칸막이나 파티션이 있는것을 선호하는지 아니면 없는 것을 선호하는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대부분의 프로그래머들은 “칸막이”나 “파티션”이 설치된 사무실을 선호했다. 이는 나의 성향과도 비슷한 듯 했다.
많은 프로그래머들이 업무중 “딴짓”을 하기위해 칸막이가 설치된 공간을 선호하는 걸까? 음 그렇지는 않다. 위 링크된 글을 보면 “개방형 사무실”에 대한 생산성에 대해 기술해 놨는데 그 효과는 생각보다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프로그래밍을 할때는 아무래도 “집중력”이 요구되는 편이다. 이때 내 책상 주변이 시끄럽거나, 사람들이 수시로 지나다니거나, 주변 대화가 시끄럽다면 “집중력”을 저하시키는 요인이 된다. 즉 관리자 입장에서는 관리가 수월하지만 지식 노동자, 특히 프로그래머들의 효율은 떨어질 수 있다는 의미이다.
소통과 효율을 위해 꾸며진 “개방형 사무실”이 오히려 서로간의 소통을 감소시키고 효율을 떨어트린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한다. 모니터를 두고 건너편의 사람과 눈을 자주 마주친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굉장한 부담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단순히 성격이 내성적이라고 그럴수가 있다고 한다면 그건 큰 오해이다. 누가 나의 모니터를 쳐다보고 있다고 한다면 그건 썩 유쾌하지 못한 일이니 말이다.
현재 사무실 환경이 워낙 신경쓰인 나머지 (일단 집중력이 크게 저하되었다.) 시중에서 파는 모니터 보안필름을 사비를 들여 구입하였다. 보안 필름은 정면에서 볼때만 화면이 보이고 측면에서 바라보면 모니터가 마치 “검은색”으로 보이는 효과를 가져다 준다. 그런데 이 보안 필름만 붙여도 이내 내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꼈다. 참 신기하다….
난 딴짓을 선호하지 않는다. 단지 업무시간에 내게 할당된 프로그래밍을 열심히 하고 싶을 뿐이다. 그럴려면 “집중력”을 키워야 하는데 오픈된 사무실은 내게 많은 방해 요인을 가져다 준다.
아무래도 현 회사의 관리자들과 나는 바라보는 방향이 맞지 않나 보다. 난 칸막이나 파티션이 높게 쳐져있는 환경을 선호하니 말이다.
칸막이가 필요하다면? 뭐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