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의 퇴사를 막은 썰

어느 여직원 이야기

대부분의 직장생활을 “SW개발자” 로 살아오다가 3년 전부터 살짝 낯선 포지션으로 살아오고 있습니다. FAE 인데, 하는일이 많이 다르거나 하진 않지만 “개발”로 월급 받는게 아닌 차이가 있습니다. 즉 “개발업무”가 주가 아니란 뜻입니다.

위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처음엔 적응이 안되다가 4년차에 접어들면서 나름 적응도 되고 요령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또한 개발만 했을때와 또다른 세계를 경험해 보니 하는 일은 마음에 들진 않더라도 “배우는게 있다” 라고는 느낍니다.

하지만 저도 몇번을 퇴사하고픈 마음을 가졌는지 모릅니다. 개발과 기술지원은 또 다른 세계더군요. 가장 어려운 부분은 내 실수나 잘못이 아닌데도 중간에 낀 제가 책임을 뒤집어 쓰거나 총알받이가 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계속 가슴속에 사표를 가지고 있었지만 가정과 아이를 생각하다보니 어쩔수 없이 “버틴다”가 맞을거 같습니다.

그렇게 3년째 되는 작년 봄, 회사에서 관리팀에 여직원 1명을 충원하였습니다. 당연히 저랑은 접점도 없고 하는 일도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처음에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뭐 회사에 사람 1명 더 들어오나보다 생각했지요.

다만 제가 다니는 곳도 “남초” 회사이기 때문에 이 특유의 남초 회사 분위기에 잘 적응할까? 라는 의문도 들기도 했습니다. 더군다나 회사에서는 가장 나이가 어린 축(그럼에도 30대 중반)에 속하고 저랑도 나이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에(대다수 직원들이 내 또래거나 나보다 나이가 많음) 적응을 잘 할련지 궁금하긴 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녀의 적응은 순조로워 보였습니다. 아침에 출근하면 인사도 잘 하는 편이고 근태 에티켓은 잘 지키는 편이더군요.

입사한지 얼마 안된 그녀는 기본은 잘 지키고 인사도 잘 하는 괜찮은 모습을 보여줬다 – ChatGPT 이미지

한 두달간은 무난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대체적으로 밝은 모습이며 저 포함 사람들을 대할 때 친절한 편입니다. 물론 입사 초기라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저는 보통 직장에서 사람을 볼 때 대략 3개월은 지켜보는 편인데 3개월 동안 그녀의 모습은 일단 “기본은 잘 지킨다” 라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래서 회사 탕비실에가 간혹 마주칠 때 안부를 묻거나 이 회사 다닐만 하냐고 묻기도 했했습니다.

그렇게 무난하게 시간이 흐르고 있을때, 회사에서 추진한 1박2일 워크샵을 가게 되었습니다. 이 때 여기서 그녀의 모습이 살짝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바닷가 쪽을 가게 되었는데, 낚시를 하면서 간단한 체육 활동 하고 숙소로 돌아오는 일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낚시를 하러 갔을 때 문제가 발생합니다. 모 임원이 실제 낚시터에 와서 예약한 상품을 확인하고 그 담당인 여직원을 불러놓고 이게 맞냐고 닥달을 하게 된거지요.

모든 직원들이 이 상황을 숨죽여 지켜봤습니다. 당사자인 여직원은 얼굴이 흙빛이 되어 바르르 떨고 있더군요. 제 입장에서도 모 임원이 왜? 굳이?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여직원에게 뭐라고 하고 있더군요. 결국 그냥 진행하기로 하고 낚시 활동은 진행됐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 여직원이 제 옆으로 와서 조용히 물어봅니다.(하필이면…제가 그래도 말걸기 편해 보였나 봅니다) “모 임원님 원래 저러시나요? 저 너무 당황스러워요~” 라고 말이죠.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겨요~” 라고 얘기해주고 넘어갔습니다. 물론 그 여직원의 표정은 좋지 않았지요.

그 뒤로 그 여직원(이하 후배)의 행동이 굉장히 조심스러워졌던거 같습니다. 입사 초기에 봤던 웃는 모습은 이미 사리진지 오래입니다. 그러면서 어느 순간 부터 병원을 자주 가기 시작합니다.

회사 탕비실에서 우연히 마주쳤는데 호기심에 한번 물어봤습니다. “요즘 표정도 안좋고 병원도 자주 다니는데 어디 문제있나요?” 라고 물어보니 이런 의외의 답변이 돌아옵니다. “이런 회사 분위기 처음 겪어봐요.”

엥? 이 정도 가지고 회사 분위기 운운한다고? 약간 의아했지만 호기심에 자초지종을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커피 타임이나 가지자고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후배는 그동안 자신이 생각했던 불편한 부분을 얘기하기 시작합니다.

  • 지난번에 워크샵 갔을때 모 임원이 이런 분일줄 몰랐어요. 갑자기 저한테 화를 왜 내시는거죠?
  • 이 회사에 이상한 사람들이 있어요. 너무 싫어요.
  • 옆에 여자 선배 까탈스러워요. 제가 견딜 수 있을까요?
  • 전에 회사는 이렇지 않았는데 여기 너무 강력한 분들 많아요. 그래서 그런가 몸이 안좋아지고 체하기도 해요

이 얘기를 듣고 전 살짝 당황했습니다. 그래서 물어봤습니다. “혹시 직장생활을 몇년 했었나요?” 그랬더니 돌아온 답변은

10년이요……

아 이게 뭘까요? 10년이면 직장 생활을 꽤 한편인데 이런거 때문에 힘들다고 하는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지금 다닌 회사는 제 입장에서는 전 직장 보다 인간 관계 스트레스가 적고 심지어 회사 대표님은 사무실에 거의 나오시지도 않는 편입니다. 그리고 자기 할일만 하면 터치하는 사람도 거의 없고 사무실에 상주 인원도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10년이면 직장 생활 꽤 한거 같은데 이 정도 가지고 힘들다고 하면 어떡해요?” 그랬더니 돌아온 대답은 “제가 이 전 직장을 9년인가 다녔는데 거기서는 이런 사람들도 없고 이상한 사람도 없었어요. 그런데 여기는 제 상상을 초월하는 사람도 있네요.”

아 이게 무슨 온실속의 화초같은 얘기일까요. 이 후배의 치명적인 단점은 바로 “마음이 여리다” 였습니다. 인간관계에서 자기가 느끼는 스트레스 레벨이 지극히 낮아 보입니다.

제가 그래서 조언 하나 덧붙입니다. “이 회사는 반대로 뒤집어 보면 장점이 훨씬 더 많다. 특히 관리쪽 업무는 편하고 일의 양도 많지 않으니 잘 버텨봐라. 아직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적응이 안되서 그런거다~ 나중에 또 궁금한게 있으면 언제든 물어봐라” 라고 얘기하고 마무리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느낀 점은 “과연 이 친구가 더 다닐 수 있을까?” 였습니다.

늘 사직서를 품고 다니는 후배, 겨우겨우 말리다

그 이후에 그 후배를 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여린것도 있지만 직장 생활에서 필요한 “처세술” 이 너무 부족해 보였습니다. 너무 솔직하고 정직하며 눈치없게 화살을 다 맞는 스타일입니다.

입사한지 6개월 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수시로 병원을 들락거리며 몸이 아파보이는 채로 회사를 다니고 있습니다. 그러다 저한테 얘기할께 있다고 하길래 별도로 커피타임을 가졌습니다.

역시 예상된 발언이 나왔습니다.

저 퇴사하려고요. 집에서 고민 많이 했는데 여기 이상한 사람들 상대하는 것도 어렵고 윗분들 상대하는 것도 너무 힘드네요.

여전히 “멘탈이 약한 소리”만 힙니다. 그래서 정신좀 차리게 해줄려고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 다른데 갈 때는 있느냐? 요즘 같은 경기에 그만두고 구하는건 최악이다.
  • 이상한 사람들은 잘 피하면 된다.
  • 이제부터 좀 요령것 상대해라. 요령이 없으니 스트레스를 더 받는 것이다.
  • 여긴 연봉도 괜찮고 대우도 좋은데 이런 거 때문에 포기하고 그만둘꺼냐.

이랬더니 갑자기 자리에게 울기 시작합니다…..

급 당황스러웠습니다. 전 단순히 얘기만 들어주고 퇴사를 설득 했을 뿐인데 갑자기 눈물을 쏟아내더군요. 참 같은 사람이라도 스트레스를 느끼는 차이는 존재하나 봅니다.

좀 진정이 된거 같아 보여서 다시 사무실로 들어오면서 “내가 종종 알려줄테니까 이대로 해봐라~” 하고 들어왔습니다. 그랬더니 다음날 보더니 일단 버텨보겠다고 하더군요.

그 뒤로 이 후배에게 “나만의 처세술” 을 틈틈히 알려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알려주면서 재밌었던 건 이 후배가 저의 처세술에 너무 놀라워 하거나 이런 것도 있냐고 박수를 치더군요. 또다시 “온실의 화초” 라는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나서 다시 웃음을 조금씩 찾더군요. 그런데 웃겼던 점은 이 후배가 저의 처세술을 철저하게 그대로 따라한다는 점이었습니다. 물론 잘 써먹는거 같아 보였지만 30대의 젊은 직장인 치고 좀 순수하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성향이 금방 바뀌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입사한지 1년 동안 병원을 주구 장창 들락거립니다. 그 후배 말로는 이 전직장에서는 이런 적이 없는데 여기 와서 몸이 아프고 체하고 한다네요. 딱 봐도 스트레스성 증후군입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흘러 후배가 1년이 넘었을 즈음에 다시 제게 할말이 있다고 합니다.(이제는 제가 멘토가 되버린듯 합니다. 전 나이 어린 후배들에게 막 대하거나 수직적으로 찍어 누르지 않거든요) 그래서 이번에는 회의실에서 얘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또 퇴사를 고민한다고 했습니다. 왜? 갑자기? 잘 지내는거 아니었어? 저도 당황합니다. 이유가 뭔지 물어봤습니다.

모 직원이 있는데 너무 이상하고 강력해요. 그 사람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못 다니겠어요

그 직원의 뭐 때문에 힘드냐고 물어보니 그 사람이 요청을 했는데 후배가 양식에 맞게 요청해야 된다고 하자 그 직원이 큰 소리로 “당신이 알아서 해야지 이걸 왜 나한테 요청하라 그래?” 라면서 소리를 질렀다고 하네요. 물론 그 직원은 좀 안하무인으로 유명한 사람이긴 합니다.

이번에도 살짝 당황스러웠습니다. 이걸로 퇴사 생각을 하다니요. 또 B라는 뭐 임원이 뭘 시켰는데 자기가 모르는 걸 시켜서 이걸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길래 결국 전 팩트만 얘기해 주기로 했습니다.

  • 이상한 사람은 잘 피하면 된다. 말로 떠들면 메일로 증거 남겨라
  • 윗사람이 아는 것만 시키겠느냐. 그러면 너가 적극적으로 나서야지 그걸 떠 먹여달라고 할꺼냐
  • 다른데 이직 당장 할 수 있어? 지금 그만두고 일상 생활 가능하면 그만둬도 된다.

이랬더니 또 다시 눈물을 주르륵 흘리면서 또 다시 저를 당황하게 합니다.

역시나 후배는 마음이 여린 사람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좀 쌔게 말을 했습니다. 퇴사는 너 자유인데 너가 다른 데 갈 자신 있거나 여기보다 장점이 많은 회사를 찾거나 언제든 나가도 좋다~ 라고 말을 했더니 잘 고민해 보겠다고 합니다.

며칠뒤에 그녀는 “다시 잘 버텨볼께요~” 로 마무리 됐습니다.

우리 모두 퇴사를 꿈꾼다. 하지만 버티는 것

제가 후배를 괜히 잡았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어차피 저도 이 회사를 오래 다니고 싶지 않거든요. 그럼에도 가정을 꾸리기 위해서 버틴다는게 맞을 거 같습니다.

역시 사람은 잘 바뀌진 않습니다. 그 후배는 그 이후에 한번 더 “퇴사 파동”을 일으킵니다. 이번에는 회사 대표님한테 무슨 지시를 받았는데 자기는 잘 답변하고 대응했다고 생각했는데 대표님이 잘 못알아 듣는다고 얘기했다면서 이러다가 나가라고 할까봐 도저히 못다니겠다는 거였습니다.

역시나 얘기하면서 또 눈물을 흘리는 그녀…. 이번에도 제가 팩트만 조곤조건 짚으면서 이러니까 못알아듣는다고 하지~ 라고 설명하니 그제서야 수긍합니다. 그리고 나가라고 지시한 적도 없는데, 우리나라는 권고사직을 함부로 못한다는 법까지 설명해가며 쓸때없는 걱정하지 말고 멘탈이나 키우라고 얘기했습니다.

이렇게 퇴사 파동은 잘 마무리 되고 종종 가르쳐주는 “처세술”에 힘입었을까요? 후배가 입사한지 어느덧 1년 6개월. 이제 그녀는 적절한 처세술과 대처를 통해 나름 잘 적응한 모습을 보입니다.

많이 좋아진 후배를 보며 감개무량했다 – ChatGPT 이미지

물론 후배는 “여전히 적응이 안된다” 라고 얘기합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여전히 독립하고 싶고 눈치를 보고 싶지 않으며 휘둘리고 싶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현 회사에 나름 잘 적응해 보이는 그녀. 심지어는 청출어람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능숙한 처세술을 부릴 때가 있습니다. 그럴때 제가 한마디 했습니다. “오~ 이거 나보다 뛰어날때가 있네? 많이 발전했어”

그렇습니다. 내가 생존을 하기 위해서는 일단 적응해야 합니다. 적응하고 난 다음에 계획을 세우고 움직여야 될거 같습니다. 도저히 아니다 싶으면 당장 때려 치는게 맞지만 그렇지 않다면 나중을 위해 잠시 사직서는 넣어둬야 할지 모릅니다.

언제 한번 이런 얘기를 후배에게 한 적이 있습니다.

너나 나나 여기서는 결정권 없는 똑같은 직원이야. 나이가 무슨 소용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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